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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임씨扶安林氏 득관조得貫祖이신 계미공季美公은 충선공忠宣公 몽주夢周의 아홉째 아들로 고려조高麗朝에서 문과에 등제후登第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하시고 벽상삼한태사壁上三韓太師에 이르렀으며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에 작위爵位와 함께 보안백保安伯에 봉함을 받아 이로 하여금 관향貫鄕을 삼았다고 문헌文獻으로 전傳한다. 또한 금성세가 적錦城世家遺蹟에는 「문과급제하여 벽상삼한태사壁上三韓 太師로 평원군平原君에 이르시었음이 관서보關西譜에서 나왔다」라고 기제記載되어 있다.

 

득성시조得貫始祖를 위시한 열조烈祖님들의 위패를 모신 시당산소재사당提常山所在祠堂을 비롯하여 역세조녕歷世尊靈들을 모시는 연천제鳶天齊가 보안현구지保安縣舊趾와 접해 있고 이곳에 보소譜所를 설치設置하여 발행發刊한 정사보丁巳譜에 보안임씨수씨사실保安林氏受氏事實과 문헌공사적文憲公事蹟은 당시에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중에도 한국성씨대백과에는 「파도波濤에 밀려 보안현保安縣의 안흥 어귀에 닿게 되었는데 이곳이 곧 보안현내保安縣內의 항구에 닿아 상륙하게 되었고 그 후 왕의 오해가 풀려 平原府院君保安伯에 封해짐으로써 또다시 高麗朝에 벼슬하게 되고 그곳에 定着케 되니 이로서 관향貫鄕을 삼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문헌공文憲公의 신도비神道碑는 밀직공파密直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가 득관조得貫祖의 높은 뜻을 영원永遠히 기리고저 신도비건립 위원회를 구성하여 1999年 5月 8日에 부안군 보안면 상림리에 건립하였다.

 

[參考] 숭모사崇慕祠에 문헌공文憲公, 서하공西河公, 판사공判事公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扶安郡 保安面 上林里)

- 時祭日 :  연천제 숭모사 每年 양 3월 세째 토요일,  10時 享祀